파라과이는 남미 대륙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국가 중 하나였다. GDP 규모, 디지털 인프라, 글로벌 산업 연결성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비해 낮은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파라과이의 입장은 바뀌었다. 특히 암호화폐 산업의 성장과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글로벌 과세 논쟁이 격화되자, 파라과이는 조용한 실험을 시작했다.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전기 요금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이 저렴한 전력 비용은 곧 글로벌 암호화폐 채굴자들에게 엄청난 기회로 작용했고, 수많은 비트코인 채굴 기업이 파라과이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 산업의 성장성을 인지하고, 세수 확보를 위한 디지털 세금 제도 정비에 착수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파라과이가 도입 중인 디지털 세금 제도의 구체적인 구성, 암호화폐 채굴과 과세의 관계, 외국 기업을 위한 규제 유연성, 그리고 이러한 실험이 가지는 국제적 의의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본다.
파라과이의 디지털 세금 제도: 암호화폐 수익 과세를 위한 첫걸음
파라과이 정부는 2019년까지도 암호화폐를 세금 체계 내에 편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암호화폐 수익으로 인한 외화 유출, 에너지 사용 급증, 그리고 암암리에 발생하는 디지털 거래의 증가로 인해 2021년부터 디지털 자산 관련 세제 도입이 본격화되었다.
조세청(DGII)은 암호화폐 수익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여 소득세(ISR)의 과세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다만, 과세 시점은 명확히 ‘수익 실현 시점’, 즉 암호화폐를 환전하거나 물품·서비스로 교환할 경우로 한정되었다. 단순 보유만으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 같은 구조는 과세 대상자 입장에서 분명한 기준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과세 회피 루트를 열어두는 허점도 존재하게 된다.
또한, 파라과이는 디지털 거래 플랫폼 등록 의무나 암호화폐 지갑 추적 시스템은 아직 완비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수많은 채굴자와 투자자들이 파라과이의 세법을 ‘느슨한 통제’로 해석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선택하는 일이 빈번하다. 파라과이 정부는 최근 블록체인 기반 납세 검증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으며, 향후 자동화된 과세 시스템 도입까지 계획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의 목적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에서의 과세 정의와 국가 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실험적 조치다.
암호화폐 채굴 허브로 떠오른 파라과이와 과세 현실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력발전 대국이며, 전체 전력 생산의 90% 이상을 이타이푸(Itaipú) 수력발전소를 통해 공급하고 있다. 이같은 전력 자급 구조 덕분에 암호화폐 채굴자들은 전 세계 최저 수준의 전기료로 채굴을 진행할 수 있다. 그 결과 파라과이는 단기간 내에 남미 최대 채굴 허브 중 하나로 성장했다.
문제는 채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이로 인한 세수 확보는 극히 미비하다는 점이다. 채굴된 암호화폐가 해외 거래소를 통해 환전되거나 장기 보유될 경우, 정부는 수익 실현 여부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굴업체의 절반 이상이 탈중앙화 거래소(DEX)를 이용하거나 익명성이 높은 글로벌 지갑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과세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채굴업 등록제, 전력사용량 기반 과세 모델, 디지털 월렛 실명제 등을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기반과 행정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여 시행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과이는 ‘세금 없는 채굴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점진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규제를 다듬고 있다.
외국인 디지털 기업을 위한 세제 유연성과 디지털 창업 환경
파라과이는 자국 산업의 디지털화를 이루는 동시에 외국인 디지털 기업 유치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 디지털 기반 비즈니스에 한해 법인세 감면, 부가세 면제, 5년간 세금 유예 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온라인 교육, 웹 기반 서비스, 콘텐츠 플랫폼 운영 등 비물리적 산업에 대해서는 세무 행정 절차도 간소화되어 있다.
외국 기업은 별도의 파라과이 국적 파트너 없이도 단독 법인 설립이 가능하며, 전자신고 시스템을 통해 모든 세금 처리를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 있다. 중앙은행과 조세청은 디지털 기업의 자금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 외환거래 보고 시스템과 세금 데이터 연동 체계를 마련 중이다.
디지털 창업을 위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특히 ‘Emprende Digital’ 프로젝트는 창업 교육, 멘토링, 초기 자금 지원, 현지화 컨설팅까지 포함된 패키지로 외국인 스타트업의 조기 정착을 돕고 있다. 이처럼 파라과이는 과세 유연성과 창업 인프라를 병행 구축하면서, 디지털 경제 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다.
파라과이 디지털 세정 실험의 국제적 함의와 한계
파라과이의 디지털 세금 실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기술이 정책을 끌고 가는 전환기 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 사회는 OECD의 디지털세 도입 논의와 더불어, 개발도상국들의 과세권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파라과이처럼 기술적 여건이 부족한 나라가 과세 인프라를 어떻게 확장해가는지는 매우 중요한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파라과이 정부는 2025년까지 디지털 세정 전환을 완료하기 위한 ‘전산 통합 세무 플랫폼(PTFI)’ 구축을 진행 중이며, 이 시스템은 블록체인 기반 납세 이력 추적 기능과 자동 환율 계산 모듈까지 포함될 예정이다. 또한 AI 기반 신고 모니터링 도구도 함께 시험 중이다. 이 모든 시스템은 납세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탈세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디지털 금융 문맹률이 높은 국민층, 행정 인프라 부족, 법적 해석의 미비 등은 파라과이의 디지털 세금제도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과이의 움직임은 디지털 조세 정의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실험이다. 소규모 국가가 어떻게 세정 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기술을 활용해 세수권을 회복하는지에 대한 글로벌 롤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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