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금제도

브루나이가 세금 없이도 디지털 세금 제도를 도입한 이유

mongsnews 2025. 7. 26. 20:00

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 북서부에 위치한 작지만 경제적으로 매우 독특한 국가이다. 공식적으로는 국민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가 없으며, 전체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절대군주제 국가이다.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는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며, 의료와 교육까지 전면 무상이다. 세금이 없어도 가능한 이 복지 시스템은 오랫동안 지속된 천연가스와 석유 수출 수입 덕분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브루나이는 조용히 새로운 시도를 준비해왔다. 바로 디지털 세금제도 구축이다.

세금을 걷지 않으면서 세금 제도를 디지털화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을 때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단순한 세수 확보 이상의 의도가 숨어 있다. 브루나이 정부는 향후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 다변화를 위해 반드시 행정 체계의 디지털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실제 과세를 위한 구조라기보다는 행정 투명성과 공공재정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먼저 기능하고 있다.

브루나이의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 이유

이 글은 브루나이의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 과정과 의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전략적 배경을 자세히 살펴본다.

 

행정 디지털화를 이끄는 디지털 세금 제도의 의미

브루나이의 재정 구조는 전통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에 집중되어 있다. 이 수입은 국가 전체 예산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이에 따라 별도의 국민 소득세나 기업 법인세 없이도 국가 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유가의 불안정성과 자원 고갈 가능성, 그리고 기후 위기와 관련된 글로벌 에너지 구조 전환 흐름은 브루나이에게 중대한 도전을 던졌다. 정부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했고, 그 출발점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 세금 제도였다.

 

브루나이 정부는 이슬람 율법에 기반한 전통적인 행정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이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회계 및 세무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이러한 이중성을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도구로 간주되었다. 특히 외국계 기업과 투자자들에게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납부해야 하는 로열티, 수입관세, 특정 수수료 등 다양한 형태의 재정 의무가 존재하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브루나이 정부는 통합 전자 과세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세무를 통한 과세보다, 기록과 추적, 그리고 행정 효율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공공 회계자료와 예산 편성 정보가 일관되게 연결되며, 부패와 비효율을 줄이는 동시에 국제 회계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이 시스템의 주요 목표이다. 다시 말해 브루나이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납세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간의 금전 흐름을 투명하게 관리하려는 전략적 시도에 가깝다.

 

디지털 세금 제도 운영의 핵심 시스템과 특징

브루나이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브루나이 재무청이 주도하는 통합 행정 플랫폼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플랫폼은 SPB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말레이어로 통합 회계 시스템이라는 뜻을 가진다. SPB 시스템은 국가 예산 편성, 공공사업 회계, 수입 관세 납부, 로열티 징수, 그리고 정부 부처 간 재정 거래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클라우드와 연동되어 있으며, 모든 회계자료가 디지털화되어 실시간으로 중앙 서버에 저장된다.

 

외국계 기업은 이 시스템에 의무적으로 등록되어야 하며, 매달 전자 송장을 제출하고, 각종 수수료나 로열티를 디지털 방식으로 납부해야 한다. 기업들은 해당 거래 내역을 자동화된 양식으로 입력하고, 시스템은 이를 바탕으로 통계와 감사 보고서를 자동 생성한다. 그 결과 정부는 특정 산업군에서 발생하는 수입 흐름을 정확히 추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예산 편성과 정책 수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브루나이 정부는 디지털 세금 제도를 통해 단순히 회계를 전산화하는 수준을 넘어, 국제적 신뢰도와 행정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브루나이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 소규모 자원 의존 국가들이 채택할 수 있는 모범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세금 제도는 브루나이의 외형적 변화가 아닌, 내적인 시스템 변화의 핵심이 되고 있다.

 

국민 납세는 없지만 전자세정 경험은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브루나이 국민은 여전히 직접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행정 시스템 내에서의 디지털 체험을 국민에게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차량 등록세, 행정 수수료, 여권 발급비용, 환경부담금 등이다. 과거에는 이 모든 금액을 수기로 납부하거나 현장에서 현금으로 결제해야 했지만, 이제는 모바일 앱을 통해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브루나이 정부는 이를 위해 e다루살람이라는 모바일 앱을 운영 중이다. 이 앱은 브루나이 전자정부 포털의 일환으로, 개인의 행정 문서 열람, 각종 수수료 납부, 공공서비스 예약 등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납세에 해당하는 경험은 직접 과세가 아닌, 행정 서비스 사용료의 디지털 납부라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브루나이 정부는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고령층과 지방 거주자들을 위한 세무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안내 인력을 배치해 디지털 행정 접점을 늘리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기술 적용이 아닌, 국민이 납세 시스템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드는 정책적 설계의 결과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과세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디지털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세금 제도가 그리는 브루나이의 행정 미래

브루나이는 디지털 세금 제도를 단기적인 수익 창출이 아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국가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향후 경제 다각화를 위해 관광, 금융, 핀테크, 교육 서비스 등의 산업에 외국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때 디지털 과세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브루나이는 행정 투명성과 거래 안전성에서 높은 신뢰도를 얻게 된다.

 

또한 향후 탄소세, 자산세, 고급 부동산 거래세 등 특정 조건 하에서 적용 가능한 제한적 과세도 검토되고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가 이 모든 새로운 과세 구조의 기술 기반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슬람 복지 국가로서 샤리아 율법에 따른 회계 시스템과 국제 기준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브루나이에게 디지털화는 필수 조건으로 여겨진다.

 

브루나이 정부는 이 모든 계획을 디지털 전략청과 재무청, 통신청의 협업을 통해 진행하고 있으며, 이미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국가 예산 비중을 2025년까지 두 배 이상 확대할 예정이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브루나이의 미래를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세금 없이도 세금 시스템을 갖춘다는 발상의 전환

브루나이는 세금이 없는 나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세금은 없지만 세금 시스템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단순한 과세 기술이 아니라, 행정 신뢰를 만들고, 국제 기준을 맞추며, 궁극적으로는 국민과 외부 세계가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디지털 기반의 신뢰 장치이다.

 

세금을 걷지 않더라도 공공재정의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고, 정부의 자금 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기업과 시민이 디지털 방식으로 행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루나이는 이를 통해 조용하지만 뚜렷한 방식으로 미래 행정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석유 이후를 준비하는 이슬람 복지국가 브루나이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세금 자체보다 중요한 무형의 자산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