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리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으로 인구 3만 명 남짓한 유럽의 내륙 도시국가이며,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마이크로국가 중에서도 특유의 독립성과 행정자율성을 유지해온 나라다. 오랜 시간 동안 산마리노는 세제 유연성, 금융 비밀 보호, 낮은 기업 세율 등을 앞세워 국제 자본과 사업자들의 회피처로 기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질서가 조세 투명성과 디지털 세정 인프라 구축을 요구하면서, 산마리노 역시 변화의 기로에 섰다.
특히 유럽연합(EU)과 OECD의 압력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산마리노 정부는 독립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지키기 위한 해법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납세자 신뢰 회복과 행정 시스템의 근본적 현대화를 의미하는 대전환이었다.
이 글은 산마리노가 추진한 디지털 세금 제도 전환 과정을 정책적 배경, 기술 구조, 납세자 수용 전략, 국제 연계 가능성 등의 관점에서 자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고대 도시국가의 새로운 도전, 왜 디지털 세금 제도인가
산마리노는 이탈리아 북부에 둘러싸인 내륙 마이크로국가로, 인구 약 3만4천 명에 불과하지만 고대 로마 이전부터 자율성을 유지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이다. 비록 면적은 61.2㎢로 매우 작지만, 조세 정책과 금융 자율성에서 독립된 시스템을 유지하며 오랜 기간 유럽 내 '비과세 피난처'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세 투명성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산마리노 역시 EU 및 OECD의 조세 기준에 맞춘 전면적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산마리노 정부는 조세제도의 구조적 투명성 제고와 함께 전자정부 전환 전략의 일환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을 본격 추진하게 되었다. 단순히 납세 절차의 편의성을 넘어, 행정 효율성과 국제 신뢰도 회복, 중장기적으로는 외국인 투자 유치 기반 마련이라는 복합적인 목표가 있었다. 2019년부터 디지털 세정 체계 기획에 착수한 산마리노는,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전자 인보이스와 납세자 포털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을 공식 도입하게 된다. 이는 유럽 내 가장 소규모 국가 중 하나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시도이며, 규모를 뛰어넘는 전략적 디지털화로 평가받고 있다.
eFISCO 플랫폼: 산마리노 디지털 세금 제도의 기술적 기반
산마리노 정부가 주도한 디지털 세금 제도의 핵심은 eFISCO(‘electronic Fiscal System of San Marino’)라는 전자 세정 플랫폼이다.
이 시스템은 산마리노 국세청(Azienda Autonoma di Stato per i Servizi Fiscali, AASSF)과 민간 기술 컨소시엄이 공동 개발한 통합형 플랫폼으로, 기존의 수기 신고와 종이 인보이스 기반 납세 절차를 전면 전자화했다. 모든 납세자는 개인 혹은 법인 식별번호를 기반으로 전자계정을 개설해야 하며, 모든 세금 신고 및 납부는 온라인 포털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자 인보이스 자동 전송 시스템이다. 기업은 소비자 또는 다른 기업과 거래할 때마다 발생한 인보이스를 시스템을 통해 전자적으로 생성하고, 해당 데이터는 자동으로 국세청 서버에 전송된다. 이 정보는 실시간으로 소득 파악, VAT 정산, 세무 감사 대상 선별 등에 활용된다. 또한 eFISCO는 이탈리아의 Sistema di Interscambio(SDI)와 호환성을 갖추고 있어, 국경 간 거래에서도 세무 기록이 연동된다. 이는 단순한 IT 업그레이드가 아닌, 국제 과세 기준과의 호환성을 확보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납세자 중심 설계와 중소기업 지원 전략
산마리노는 경제 구조상 중소규모 자영업자와 가족기업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다. 전체 기업의 약 85%가 종업원 1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체이며, 이들은 세무 전산화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다. 이에 산마리노 정부는 eFISCO 플랫폼 설계 시부터 중소기업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구축하고, 모바일 최적화와 직관적 UX/UI에 특히 공을 들였다. 스마트폰만으로도 납세 및 전자 인보이스 발행이 가능하며, 세액 자동 계산 기능이 기본 포함되어 있어 세무 대리인이 없이도 운영 가능하다.
또한 정부는 소기업 대상 ‘디지털 전환 바우처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POS 시스템 업그레이드, 전자 장부 프로그램 구매, 회계 시스템 도입 등과 관련된 비용을 보조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중소기업의 디지털 세금 제도 적응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전체 경제의 과세 기반을 자연스럽게 확대시키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2023년 기준, 산마리노 내 등록 사업자의 93% 이상이 전자 납세 시스템에 등록을 완료하였으며, 소득 누락률도 2년 전 대비 21% 감소하는 성과를 나타냈다.
조세 정보의 국제 교류 및 블록체인 연계 가능성
산마리노는 전통적으로 은행 비밀과 외국 자본 보호라는 특수성을 지녀왔기 때문에,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조세 투명성 확보가 주요 과제였다.
디지털 세금제도의 도입은 단순한 행정 전산화를 넘어, 국제 조세 교류 네트워크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의미도 지닌다.
특히 eFISCO 시스템은 OECD의 CRS(금융정보 자동교환제도) 및 BEPS(다국적기업 조세 회피 방지) 모델과의 연계 API 구조를 탑재하고 있어, 향후 국제 납세자 정보 교류 시 실시간 데이터 대응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2024년 하반기부터는 민간 블록체인 기술 기업과 협력하여, 전자 인보이스의 위변조 방지를 위한 분산 저장 구조도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이는 향후 조세 감사 자동화, 부가가치세 정산의 정확도 제고, 전자 납세자의 신뢰도 확보 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산마리노가 단순한 유럽의 마이크로국가를 넘어서, 조세 디지털화 모델 국가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유럽 기준 준수와 디지털 세금 제도의 실질적 성과
산마리노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EU 단일시장에 준하는 여러 조세·회계 기준을 채택하고 있으며, 특히 이탈리아·프랑스 등 인접 국가와의 경제 활동 연계성이 매우 높다.
디지털 세금제도의 성공은 산마리노가 이들 국가와 세정 데이터 공유, 부가세 정산 연동, 외국인 근로자 소득 추적 등에서 실질적 조세 협력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든 기반이기도 하다.
실제 2023년 말 기준, 전자 인보이스 도입 이후 산마리노의 세수는 전년 대비 약 11.4% 증가했으며, 부가세 누락 적발 사례는 3년 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는 기술 도입만으로 이뤄낸 결과가 아니라, 납세자 편의성 제고, 중소기업 맞춤 설계, 국제 기준 호환성 확보 등 다방면에서 체계적으로 설계된 디지털 세금 제도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디지털 세금제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금이 없는 나라 나우루, 왜 디지털 세금 제도를 준비할까? (0) | 2025.07.26 |
---|---|
코모로, 디지털 세금 제도로 바뀌는 납세 풍경 (0) | 2025.07.25 |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한 상투메, 아프리카 소국의 놀라운 변화 (0) | 2025.07.25 |
모리타니, 디지털 세금 제도로 사헬 무역 허브를 꿈꾸다 (0) | 2025.07.24 |
남수단 디지털 세금 제도: 세계 최신생국의 세무 인프라 실험기 (0) | 2025.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