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소국인 솔로몬 제도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9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국이며, 인구는 약 70만 명이다. 지리적으로 아름다운 섬들과 풍부한 어족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행정 및 인프라 측면에서는 지속적으로 낙후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특히 조세 행정은 디지털화는커녕 기본적인 세무 자료의 집계조차 통일된 양식 없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국가 재정의 대부분은 국제 원조에 의존해온 구조였다.
그런 솔로몬 제도가 2022년 이후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 전환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조세 행정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행정 효율 개선을 넘어서, 국가 재정 자립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전략적 전환의 일환이다. 조세 시스템의 전산화는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동시에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예산 기반을 자립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솔로몬 제도는 종이 장부에 의존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데이터 중심의 조세 정책 수립과 세무 감사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국민 개개인의 납세 활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오류와 탈세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해주는 핵심적인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솔로몬 제도가 왜 디지털 세금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행정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수작업 중심 조세 행정의 비효율성과 디지털화의 필요성
솔로몬 제도는 오랜 기간 동안 수작업과 구두 중심의 조세 행정을 유지해왔다. 대부분의 납세자는 자신이 속한 섬에 위치한 세무소를 직접 방문해 종이 양식을 작성했고, 이 양식은 수기로 검토되어 세액이 산출되었다. 이러한 행정 구조는 단순히 불편함을 초래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 재정에 심각한 누수와 오류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세무 담당 공무원들은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없이 장부에 의존해 업무를 처리했으며, 이 과정에서 세금 신고 누락, 이중 납부, 세액 과소 산정 같은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한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행정 간 데이터 연계가 매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수도 호니아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은 인터넷망이 불안정하고, 전기 공급도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세무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중앙 서버에 업로드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많았다. 그 결과 중앙정부는 국가 전체의 세수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었고, 이는 예산 편성과 공공 서비스 기획에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납세자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공공 서비스의 질은 낮아졌고, 국민은 ‘세금을 내도 혜택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는 탈세나 비공식 경제 확대의 원인이 되었으며, 조세 정의가 무너진 사회 구조가 고착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한 대안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디지털 세금 제도의 도입 과정과 국제 협력의 역할
솔로몬 제도는 2022년부터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받아, 디지털 세무 시스템 구축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SITS(Solomon Islands Tax System)’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으며, 클라우드 기반의 전자 세무 플랫폼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개인 및 법인의 납세 정보를 중앙서버에 통합하고, 신고, 납부, 확인까지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SITS는 먼저 수도 호니아라 지역에서 시범 운영되었으며, 이후 점진적으로 지방 도시로 확대되고 있다. 초기에는 세무 공무원과 대규모 사업자들만을 대상으로 적용했지만, 최근에는 중소상인과 농어민 등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던 국민들도 이 시스템에 자진 등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시스템은 사용자가 로그인하면 소득 수준과 사업자 유형에 따라 납세 의무를 자동으로 계산해주고, 실시간 세액 산정 결과를 전자 고지서 형태로 발급한다.
이 과정에서 국제 협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뉴질랜드 내무부와 호주 국세청의 기술 자문단이 파견되어, 시스템의 설계, 보안, 법률 체계 정비에 깊이 관여하였다. 솔로몬 제도는 자체 기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맞춤형 세무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그 결과 국가 현실에 맞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디지털 과세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모바일 기반 납세 플랫폼이 병행 개발되었다. 이는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핸드폰만으로 세금 신고 및 납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로,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중요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는 문자 메시지를 활용해 납부 기한 알림, 세무 안내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납세율 향상에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조세 문화의 변화와 국민의 수용도 확대
디지털 세금 제도의 도입은 솔로몬 제도의 조세 문화를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세금 납부가 곧 정부 간섭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지만, 전자 시스템 도입 이후 세금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공공 서비스로 환원된다는 감각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조세 교육 캠페인을 통해 국민에게 디지털 납세의 필요성과 장점을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조세 정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세무 공무원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전에는 단순한 서류 검토 업무에 머물렀던 그들이 이제는 시스템 분석, 데이터 검토, 납세자 지원 같은 보다 정교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직무 만족도도 상승하고 있다. 정부는 시스템 활용 능력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도 함께 도입하여, 디지털 행정 전환에 대한 내부 저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시스템 접속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전산 교육이 부족한 납세자들이 시스템 오류나 미숙한 입력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장 납세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공무원과 IT 전문가가 직접 납세자를 도와 시스템을 통해 세금을 신고하도록 돕고 있다.
향후 과제와 디지털 세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
솔로몬 제도가 디지털 세금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인프라의 보강이다. 아직까지 일부 섬 지역에서는 전기조차 불안정하게 공급되고 있으며, 이는 온라인 기반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영에 중대한 제약 요인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태양광 기반 세무 서비스 거점과 위성 인터넷 도입을 검토 중이다.
둘째는 법적 정비다. 현재의 조세 관련 법률은 아날로그 시대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디지털 세무 시스템을 명확하게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 영수증의 법적 효력, 디지털 신고서의 증거능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미비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5년까지 조세 관련 법률의 전면 개정을 예고하고 있으며, 국제자문단과 협력하여 표준화된 디지털 조세 법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셋째는 데이터 보안이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수많은 납세자 정보와 금융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해킹이나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정부는 시스템 내에 다중 인증 기능과 분산 저장 구조를 도입하여 보안을 강화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법의 제정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솔로몬 제도는 단순한 전산화 수준을 넘어 디지털 거버넌스를 구현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세 시스템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면, 국민의 자발적 납세 참여도는 더욱 높아지고, 이는 곧 재정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긍정적 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섬나라 행정을 연결하는 새로운 길
솔로몬 제도의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은 단지 시스템의 전산화를 넘어,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 회복과 국가 행정의 구조적 혁신을 위한 시도였다. 작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제약 속에서도, 국제 협력과 내부 개혁의지를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례는 태평양 도서국들에게 매우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과거의 수작업 중심 행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반이 되었고, 납세자 중심의 행정 체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로몬 제도가 향후 안정적인 세수 기반을 확보하고 공공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면, 그 출발점에는 오늘날 시작된 이 디지털 조세 시스템이 자리할 것이다. 낙후된 조세 체계를 벗어나 디지털 거버넌스로 도약하려는 이 나라는, 더 이상 고립된 섬나라가 아니라 연결된 국가로서 성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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