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바시는 197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작은 섬나라이며, 태평양 한가운데에 흩어진 33개의 산호섬과 환초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받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기후변화는 이곳의 주거지와 기반시설을 잠식하고 있으며, 경제와 행정 운영 전반에 걸쳐 구조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키리바시 정부는 국가 존속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지키기 위한 전략적 해법을 모색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 세금 제도의 도입이다. 이 제도는 단순히 납세 방식을 전자화하는 기술 프로젝트를 넘어, 국가의 생존 전략이자 국제사회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의 구축은 물리적 행정 인프라가 취약한 섬나라의 한계를 극복하고,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 세수 기반을 확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수면 상승의 최전선에 선 키리바시의 현실과 과세 구조
키리바시는 평균 해발고도가 2미터를 넘지 않는 초저지대 국가다. 이 말은 곧 해수면이 단 몇 십 센티만 상승해도 주거지와 행정 시설, 심지어 농지까지 빠르게 침수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연안 침식과 해수 범람은 이미 매년 피해를 반복적으로 유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부의 재정은 복구 비용과 이주 지원에 막대한 지출을 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세수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현재 키리바시의 경제는 어업, 해외 원조, 해외 노동자의 송금, 그리고 소규모 관광업에 크게 의존한다. 이 중 관광업과 어업 관련 세금은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피해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기존의 종이 기반 행정 체계와 수동적인 세금 징수 방식은 섬들이 넓게 흩어져 있는 지리적 조건과 결합되어, 과세 대상의 상당 부분을 놓치는 원인이 된다. 국세청 직원이 물리적으로 섬을 방문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들며, 우편 시스템 역시 기후 피해로 자주 마비된다. 이 때문에 키리바시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세수 확보 방안을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됐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경제 생존과 세수 확보를 위한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 배경
키리바시 정부가 디지털 세금 제도에 눈을 돌린 배경에는 명확한 경제적 필요가 있었다.
첫째, 재정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해외 원조가 장기적으로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지원금은 특정 프로젝트나 시기별로 집중되지만, 안정적인 세입 구조를 대체할 만큼 지속적이지 않다.
둘째, 해외 노동자의 송금은 개인 가계에는 도움이 되지만 국가 차원에서 세수로 연결되는 비율이 낮았다. 따라서 키리바시는 국내에서 생산·거래되는 경제 활동을 포착하고 과세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했다.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국제사회의 요구다. 키리바시는 태평양 도서국 포럼(Pacific Islands Forum)과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들 기관은 디지털 전환과 행정 현대화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특히 세금 관련 데이터의 투명성 확보와 실시간 보고 체계 구축은 국제 원조의 조건 중 하나로 명시되기도 한다. 여기에 팬데믹을 계기로 대면 행정의 한계가 더욱 두드러졌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이 닫히고 행정 직원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기존의 종이 기반 세금 징수 시스템은 사실상 마비됐다. 이때부터 클라우드 기반의 비대면 세금 시스템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인식됐다.
클라우드 기반 세정 시스템의 설계와 기술적 구현
키리바시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클라우드 기반의 중앙 세정 플랫폼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이 시스템은 전국 각 섬의 소규모 세무 사무소, 은행, 정부 부처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납세 정보와 세금 결제 데이터를 중앙 서버에 통합 저장한다. 물리적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대신, 해외에 위치한 안정적인 클라우드 서버를 활용해 해수면 상승과 자연재해로 인한 데이터 손실 위험을 최소화했다.
기술 구현 단계에서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개발 파트너가 참여해, 다국어 지원과 저속 인터넷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경량 웹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이 앱은 모바일과 PC에서 모두 접근 가능하며, 세금 신고서 작성, 전자서명, 온라인 결제 기능을 통합했다. 특히 신용카드가 보급되지 않은 지역을 위해 모바일 머니(Mobile Money) 결제 시스템과의 연동도 포함됐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 데이터 전송 구간에는 종단간 암호화(E2EE)를 적용하고, 납세자의 개인정보와 거래 기록은 국가별 개인정보 보호 규정과 국제 표준을 모두 준수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세무 데이터의 신뢰성과 무결성을 확보했으며, 향후 국제 거래나 원조금 집행 시 감사 자료로도 활용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 세금 제도가 가져올 변화와 기대 효과
디지털 세금 제도의 가장 큰 효과는 세수의 안정화다.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 덕분에 정부는 더 이상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세금을 수동으로 징수할 필요가 없다. 전자 신고와 온라인 결제를 통해 납세율이 높아지고, 과세 사각지대가 줄어든다. 또한, 세금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분석되기 때문에 예산 계획 수립과 재정 집행이 훨씬 신속하고 정확해진다.
이 제도는 행정 투명성 강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세금 거래 기록이 디지털로 저장되기 때문에 부패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키리바시의 신뢰도를 높이고, 해외 투자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 장기적으로는 전자세금계산서, 전자영수증 발급, 부가가치세(VAT) 징수 등의 기능이 추가돼 세정 시스템의 범위가 넓어진다.
무엇보다, 이 시스템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도 운영 가능하다. 행정 시설이 물리적으로 파손돼도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는 안전하게 보존되며,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세금 업무를 이어갈 수 있다. 이는 재난 복구 과정에서 재정 공백을 줄이는 핵심 장치가 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세무 디지털화를 위한 과제와 향후 전망
그러나 디지털 세금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여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인터넷 인프라의 불균형 문제다. 일부 외곽 섬은 여전히 안정적인 연결이 어렵기 때문에, 衛星인터넷이나 해저케이블 확충 같은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둘째,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 향상이다. 납세자와 세무 담당자 모두 전자 시스템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초기 혼란이 예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교육 프로그램과 현장 지원팀을 운영하고 있다.
셋째, 재정 지속성 문제다. 초기 시스템 구축은 국제 지원금으로 가능하지만, 유지보수와 기술 업그레이드에는 장기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수 증가분의 일부를 전산 시스템 기금으로 적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향후 전망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키리바시 정부는 디지털 세금제도를 기반으로 다른 전자정부 서비스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기업 설립 절차, 어업 허가, 수출입 신고를 모두 온라인에서 처리하게 함으로써 경제 활동 전반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려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세정 효율성 향상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고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종합 전략의 일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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