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금제도

유엔의 지원을 받아 디지털 세금 제도를 도입한 동티모르의 변화

mongsnews 2025. 7. 30. 21:04

동티모르는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얻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정치적 독립과는 달리, 행정적 자립과 재정적 자립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었다. 오랜 식민지 지배와 무력 충돌, 낮은 교육 수준, 극도로 부족한 국가 인프라 등은 동티모르가 스스로 세금을 징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독립 직후의 동티모르 정부는 공공 행정의 모든 것을 국제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조세 시스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조세 행정의 중심이 되는 세무 인프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납세자 등록, 세액 산정, 징수 및 납부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동티모르는 자국 내 세금을 기반으로 한 예산 편성이 거의 불가능했고, 세계은행과 유엔개발계획 같은 국제 기구의 원조에 의존한 불안정한 국가 재정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조세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였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디지털 세금 제도였다.

유엔 지원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

동티모르는 유엔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아 조세 시스템의 전면적인 디지털화를 추진하였고,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뚜렷한 방식으로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작업 조세 시스템이 남긴 구조적 한계

전면적인 수작업 조세 시스템은 동티모르의 독립 초기 행정 모습과 같다. 세무 행정 역시 수기로 작성된 장부, 종이 신고서, 구두 납부 확인 등의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세금은 있지만 이를 어떻게 걷고 관리할지는 명확하지 않았고, 지역별 세무 실무자의 재량에 따라 세금 부과가 달라지는 등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했다. 이러한 방식은 납세자에게도 혼란을 주었고, 세무 공무원의 부패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로 작동했다. 납세자는 과세 기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세금이 국가에 실제로 전달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또한 세금 데이터가 전국 단위로 통합되지 않다 보니, 정부는 각 지역에서 얼마나 세금이 징수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어떤 세금이 과세 대상인지조차 불분명했고, 통계는 왜곡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납세자 등록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실제로 세금 납부 의무가 있는 국민의 비율도 추산이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는 국가 재정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었다.

 

기초 인프라 부족 역시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의 걸림돌이었다. 인터넷 보급률은 낮았고, 세무 공무원들은 컴퓨터 자체를 사용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이처럼 낙후된 시스템 속에서 동티모르가 택한 것은, 유엔의 인적·기술적 지원을 기반으로 한 조세 전산화라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서, 제도 전반을 다시 설계하고 납세 문화를 재구축해야 하는 과업이었던 것이다.

 

디지털 세금 제도의 구조와 유엔 지원 체계

동티모르는 2020년부터 유엔개발계획과 공동으로 디지털 세금 시스템 구축에 착수했다. 프로젝트의 정식 명칭은 ‘e-Tax Timor’이며, 시스템 개발에는 동티모르 정부 산하 재무부와 외부 개발 전문가들이 협력하였다. 이 시스템은 전자 납세 번호 발급, 사업자 등록, 소득신고, 세액 자동계산, 납부 이력 관리, 디지털 인보이스 발급 등 조세 행정 전반을 디지털로 일원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유엔은 시스템 구축 자금뿐 아니라, 공무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 사용자 매뉴얼 제작, 클라우드 기반 서버 구축, 전산 보안 체계 개발 등 기술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지원했다. 특히 동티모르 정부는 자체 서버를 두는 대신, 유엔이 권장한 공공 클라우드 방식을 채택해 초기 유지 비용과 인프라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이는 국가의 디지털 역량이 제한된 상황에서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었고, 정부가 보다 빠르게 시스템을 도입하고 운영에 돌입할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납세자와 정부 사이의 접촉을 최소화함으로써, 세무 공무원의 자의적 개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납세자는 본인의 소득 범위와 사업 유형에 따라 자동으로 생성된 신고 양식을 작성하고, 온라인으로 전송하며, 인증된 은행 계좌를 통해 세금을 납부한다. 세금 납부가 완료되면 시스템은 즉시 디지털 납부 확인서를 생성하고, 이를 클라우드에 저장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기록하고 확인하기 때문에, 세금의 흐름에 대한 투명성이 크게 향상된다.

 

디지털 세금 제도가 가져온 구체적인 변화들

동티모르 정부는 이 시스템의 도입 이후 구체적인 성과를 다수 확인하고 있다. 먼저, 신규 납세자 등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자발적인 신고 비율이 과거에 비해 20퍼센트 이상 높아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납세 행위가 부담이 아닌 ‘가능한 일’이 되었다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시스템을 통한 자동 계산 기능 덕분에 세금 계산 과정에서의 오류가 현저히 줄었고, 납세자 간의 불만 역시 감소하였다.

 

또한 행정 내부의 효율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과거에는 세금 관련 데이터를 찾는 데 며칠씩 걸리던 절차가, 이제는 단 몇 분 안에 검색·조회가 가능해졌다. 세무 공무원은 세무 감사 대상자를 인공지능 기반 리스크 모델을 통해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고, 조세 회피 가능성이 있는 납세자를 사전 경고하거나 조사 대상으로 지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정부 입장에서 행정 비용 절감뿐 아니라, 탈세 억제 효과도 동시에 가져오고 있다.

 

국제 사회 역시 동티모르의 이러한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에 주목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은 이 모델을 성공 사례로 소개하며, 비슷한 환경을 가진 국가에 기술 전파를 진행하고 있다. 동티모르의 사례는 단지 시스템 도입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세무 신뢰 회복과 국가 재정 자립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험대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남은 과제와 미래 확장 가능성

물론 디지털 세금 제도의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터넷 접근성이 낮은 지역이 많고,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시스템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시스템은 도시 지역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농촌과 산간 지역 납세자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또한 동티모르 정부의 IT 인프라 자체가 취약하다는 점도 기술 유지 관리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기술 유지보수가 외부 전문가나 유엔 소속 엔지니어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구조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동티모르 정부는 향후 몇 년 안에 디지털 세금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유지·보수할 수 있는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내부 기술 자립을 위한 교육과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티모르가 선택한 디지털 세금 제도는 ‘낙후된 조세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기 위한 근본적 전환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닌, 국가의 행정적 철학이 바뀌는 과정이며,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와 재정적 자율성까지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경로이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동티모르의 조세 주권 회복의 첫걸음

디지털 세금 제도는 동티모르가 단순히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국민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공공 행정의 신뢰를 회복하며,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자립 가능한 파트너로 인정받기 위한 핵심 기반이다. 유엔의 기술적 지원과 국제사회의 협력은 디지털화라는 도전을 가능하게 했고, 동티모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시스템이 보다 많은 국민에게 도달하고, 교육과 인프라가 뒷받침된다면, 동티모르는 조세 주권을 실질적으로 회복한 첫 번째 신생 국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변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고, 국제 사회가 주목해야 할 디지털 전환의 모범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