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수입 의존에서 디지털 세금 제도로 나아가는 몰디브의 선택
몰디브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하며 세계적인 관광지다. 연중 따뜻한 기후와 에메랄드빛 바다, 럭셔리 리조트가 어우러진 이 나라는 관광 산업 하나로 국가 경제의 80퍼센트를 감당한다. 그러나 겉보기의 풍요와 달리, 몰디브는 국가 재정 구조에 깊은 불균형을 안고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 수입이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와 직결되어 있었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제선 항공편이 끊기자 몰디브 경제는 치명적인 충격을 받았다. 관광객이 사라진 몰디브는 순식간에 세수가 끊기고, 공공서비스조차 위태로운 상태에 처했다.
이러한 위기를 계기로, 몰디브 정부는 경제 구조와 조세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등장한 것이 ‘디지털 세금 제도’였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세무 행정을 전산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세수 기반을 다각화하고, 관광 외에도 자국민과 기업으로부터 안정적인 세금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몰디브처럼 다도해 국가로 구성된 지역에서 특히 필요성이 높다. 물리적인 행정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앙 집중형 종이 기반 세무 시스템은 오히려 투명성과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몰디브 정부는 디지털 세금 제도를 통해 단지 세금 징수 방식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조세 구조를 만들고, 외국인 투자자와 스타트업에게 투명한 세무 환경을 제공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다시 말해, ‘관광 수입’이라는 불안정한 한 줄기 물줄기에서 벗어나, 국가 자체의 조세 기반을 디지털 방식으로 확장하려는 근본적인 시도였다.
낙후된 세무 시스템의 문제와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
몰디브의 전통적인 세무 시스템은 종이 기반으로 운영되었고, 대부분의 행정 절차는 수도 말레에 집중돼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지리적으로 섬들이 흩어져 있는 몰디브의 특성상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지방의 중소 상공인은 세무신고를 위해 배를 타고 본섬으로 이동해야 했고, 세금 납부 또한 지정 은행 지점에서만 가능했다. 이러한 제도는 자영업자나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사실상 세무 참여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게다가 몰디브는 관광 수입에 의존하면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직접세는 거의 없었다. 주요 세금은 외국인 관광객이 숙박할 때 부과되는 숙박세, 환경보호료, 수입 부가가치세 등이었으며, 이것이 국가 전체 세수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러한 구조는 팬데믹 같은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했다. 수익원이 단일화된 상태에서 외부 방문객이 끊기면 국가 재정은 그대로 마비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조세 구조의 다각화”와 “행정 신뢰 회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출발점이 바로 디지털 세금 제도였다. 정부는 모든 납세 행위를 전자화하고, 인공지능 기반의 세무 분석 도구를 도입하여 납세자의 이력, 위험도, 신고 이행 여부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납세자는 이제 모바일과 웹 기반 포털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신고와 납부가 가능하며, 회계자료를 직접 업로드하거나, 전자 인보이스를 자동으로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국가의 세무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단순히 정보화 수준을 넘어, 국세청 내부 업무의 효율화, 납세자 편의 증대, 세무 감사의 정밀도 향상 등 행정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기 시작했다.
디지털 세금 제도의 기술 구조와 납세자 중심 서비스
몰디브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정부 주도로 개발된 통합 세무관리 시스템인 MoTax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시스템은 세무당국, 금융기관, 납세자 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모든 납세 행위를 추적 가능하게 만든다.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와 접근성이다. 세무 포털은 영어와 디베히어로 동시 제공되며, 모바일 사용 비율이 높은 몰디브 국민의 특성을 반영해 전용 앱도 개발되었다.
MoTax 시스템은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되며, 각 납세자의 소득 정보, 사업자 등록 상태, 세금 납부 이력 등을 중앙 서버에서 자동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 특히 이 시스템은 납세 의무 발생 시점부터 신고 기한, 연체 여부까지 전 과정을 자동 알림으로 관리하여 납세자가 실수나 누락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돕고 있다. 신고와 납부가 끝나면 실시간으로 세금 납부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으며, 과거 이력도 전자파일 형태로 안전하게 보관된다.
또한 이 시스템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이상 거래를 탐지하고, 세금 회피 가능성이 있는 사업체를 조기 식별할 수 있다. 고위험 납세자나 불규칙한 수익 패턴을 보이는 사업장은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플래그를 걸고, 국세청 담당자가 집중 관리하게 된다. 이는 기존의 수작업 감사보다 훨씬 정교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공정한 과세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관광사업자들 역시 디지털 세금 제도의 수혜를 받고 있다. 예전에는 외국인 투숙객이 카드로 결제한 비용과 수기로 기록한 장부 간 불일치가 잦았지만, 이제는 시스템상에서 카드결제 내역과 사업자 매출 기록이 자동 연동되기 때문에, 수익 누락이 어렵고 공정한 세무 집행이 가능해졌다.
관광 의존 경제에서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로의 전환
디지털 세금 제도는 몰디브 정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전까지는 관광객 수가 줄면 세수가 줄고, 국가 지출이 곧바로 줄어들어야 했던 단선적인 재정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제 주체를 과세 대상으로 포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관광 산업 외에도 소규모 제조업, 핀테크 스타트업, 원격 근무 기반 프리랜서 등의 활동도 정식 과세 시스템으로 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납세 저항이 적은 구조로 설계되었다. 일정 소득 이하 국민에게는 자동 감면이나 납부 유예 혜택이 주어지며, 중소 사업체는 신고 절차를 단순화하여 세무 행정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였다. 정부는 전자세무 상담 서비스도 운영해, 국민이 세법을 이해하고 스스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몰디브는 2024년부터 전자 인보이스를 의무화하고, 이와 관련된 법적 제도도 정비하고 있다. 모든 거래를 디지털 기록으로 남기는 이 구조는 장기적으로 조세 투명성을 높이고,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몰디브는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공동으로 조세 기반 확대와 디지털 세정 기술 고도화에 투자 중이며, 이를 통해 향후 기후재난 대응 예산 확보, 복지 지출 확대 등의 정책 유연성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세금 시스템이 곧 국정의 신뢰가 되는 시대
디지털 세금 제도는 단지 세무 절차의 전산화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자신 있게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몰디브는 관광이라는 외부 의존적 경제 구조를 넘어서기 위해, 조세 체계의 내실화라는 내향적 개혁에 착수했고, 그 방법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를 선택했다.
몰디브의 사례는 디지털 전환이 대규모 국가만의 전략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고, 경제 기반이 취약하며, 행정 효율성이 낮았던 이 작은 섬나라는, 기술을 활용해 국가 운영의 틀을 재편하고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를 중심으로 한 이 변화는, 행정 신뢰 회복은 물론, 국제적 경제 파트너로서의 신뢰도 회복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몰디브는 이 제도를 기반으로 한층 더 확장된 디지털 행정, 스마트 공공서비스, 전자정부 구축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출발점은, 세금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국민 관계에서 디지털로 신뢰를 재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