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 없는 나라 나우루, 왜 디지털 세금 제도를 준비할까?
나우루는 인구 약 12,000명, 면적 21㎢에 불과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독립국이다. 인도양의 외딴 섬에 위치한 이 나라는 특이하게도 소득세가 없다. 공식적으로는 국민도, 기업도 정기적인 소득세나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과거에는 인광석(인산염)의 대규모 수출로 인해 세수 확보가 가능했으나, 자원이 고갈된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 재정을 호주 정부의 원조와 외국 기업의 면세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무소득세 국가가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세금 제도, 전자정부, 핀테크 기반의 행정 서비스 자동화 등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시작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나우루 정부는 ‘디지털 전환 기본계획(Nauru Digital Roadmap)’을 발표하고, 조세 시스템의 전산화 및 클라우드 기반 납세 구조의 시범 적용을 선언했다.
"세금이 없는데 왜 디지털 세금제도를 도입하느냐"는 질문은 이 나라가 놓인 경제 구조와 국제 정치의 맥락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 글은 나우루의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 시도 배경과 구체적 시스템 구상, 그리고 국제 협력과 실제 과세 방식의 변화를 정리하며, 초소형국가가 조세 디지털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탐색한다.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은 단지 세금을 걷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나우루가 디지털 세금 제도라는 개념을 꺼내든 가장 큰 배경은 국제 투명성 요구와 전자정부로의 행정 전환 필요성 때문이다. 특히 OECD, 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국제기구는 나우루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비과세 피난처'로 오인되는 것을 방지하고, 행정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디지털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나우루는 과거 돈세탁 및 탈세에 연루된 역사를 가진 국가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가 신용도 개선, 해외 투자 유치, 공공 자금 추적 체계 확보 등을 위해 세무 구조의 ‘존재’와 ‘기록’ 자체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과세를 넘어, 세금이 없더라도 세금 관련 데이터를 전산화해 감시·보고·예산 시스템을 정비하는 작업에 가깝다.
2021년부터 나우루는 국세청(Nauru Revenue Office)을 재편하고, 기존 종이기반 등록 절차를 디지털화했다. 현재 모든 외국 기업과 외국인 근로자, 정부 계약 업체는 ‘디지털 세금 번호(DTIN)’를 발급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활동 내용이 기록·추적된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결국 세수 확보보다는 기록 관리, 회계 투명성, 정부의 통제력 회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시스템 없이 진행된 세정 구조, 이제는 전자 인보이스가 중심
과거 나우루의 세정 구조는 제도적 ‘빈칸’에 가까웠다. 기본적인 세무 신고 시스템이나 회계 전산망조차 없었으며, 사업자 신고조차 수기 장부에 의존했다. 특히 외국 업체가 주도하는 건설, 통신, 물류 등의 부문에서는 자금 흐름이나 재무 실태를 정부가 파악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우루는 2022년부터 전자 인보이스 기반 세정 기록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호주 정부와의 기술 협력을 통해 개발된 'Nauru-e-Tax Portal'이라는 플랫폼으로, 사업자 등록, 간접세 발생 여부, 거래 기록 등을 전자 인보이스 형태로 기록하게 한다. 나우루 내 외국 기업 및 정부 계약 업체는 매달 거래 내역을 전자 인보이스 형태로 제출해야 하며, 이 정보는 자동으로 국세청 서버에 저장된다.
또한 나우루 정부는 2023년부터 ‘디지털 계좌 기반 정산 모델’도 시범 도입하였다. 국유 토지 임대료, 항만 수수료, 라이선스 등록 비용 등이 디지털 계좌로 수납되며, 해당 기록이 자동으로 세정 시스템과 연동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세금이 아닌 ‘비과세 수입’조차도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기록·관리하게 되었다. 이는 조세 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투명성 확보라는 디지털 세금 제도의 핵심 정신에는 부합한다.
외국인 중심의 납세 구조가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을 주도하다
나우루에서 발생하는 모든 세금성 수입은 거의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 해외 파견 기업, 국제 원조기관에서 나온다. 실제로 국민 대부분은 소득세를 내지 않으며, 내부 시장 역시 매우 협소하다. 반면, 정부 지출의 대부분은 외부 계약과 프로젝트를 통해 발생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세·허가세·서비스 요금 등은 실질적으로 과세 기능을 한다.
디지털 세금 제도는 바로 이 지점을 노린다. 즉, 나우루 국민에게는 세금을 매기지 않지만, 외국 투자자나 외주 업체에게는 디지털 과세 시스템을 통해 비용과 회계 구조를 통제하는 것이다. 특히, 2023년부터 도입된 ‘서비스세 신고 전자화 시스템’은 항만, 도로, 에너지, 통신 관련 외국 업체에게 서비스 이용 내역을 자동 인보이스로 송부하고, 일정 수수료 또는 간접세를 부과하는 구조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정부 데이터 대시보드가 구축되면서, 과거에는 놓쳤던 외화 유출 흐름, 계약 불이행, 과세 누락 문제도 줄어들고 있다. 비록 직접세는 존재하지 않지만, 디지털 세금 제도는 ‘외국인을 통한 공공재 확보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국민 부담 없이 재정의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를 통한 나우루의 미래 전략
나우루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현재로서는 수익 창출 목적보다는 정부의 공공 재정 통제권 회복과 행정 투명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장기적으로 이 디지털 세정 인프라를 활용해, 소규모 관광업 과세, 해외 송금 추적, 핀테크 사업 인허가 수수료 체계 정비로까지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최근 나우루는 디지털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해, 전자정부 통합청(OneGov Nauru)을 설립하고, 납세 시스템과 정부계약 데이터, 예산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클라우드 기반 통합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이는 단순한 납세 기술을 넘어, 국가 운영 전반의 전산화를 목표로 하는 장기 전략이다.
향후 나우루는 디지털 세금 제도를 기반으로, 다국적 기업 대상 제한적 법인세 도입, 서비스세 정식 법제화, 개인 소득 파악을 위한 등록제 등까지 검토하고 있다. 물론 이는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한 상징적 조치일 가능성도 있지만, 세금 없는 나라에서 세금 데이터를 통해 국정을 설계하는 첫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무소득세 국가가 보여주는 디지털 세정의 또 다른 길
나우루는 여전히 소득세가 없는 나라다. 그러나 세금이 없다는 이유로 디지털 세금제도를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세 없는 환경 속에서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디지털화하여 공공성과 신뢰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디지털 세금 제도’가 단순한 세금 수단이 아니라, 국가 행정의 투명성과 시스템 정비, 그리고 대외 신뢰도 확보를 위한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작은 섬나라 나우루는 세금을 걷지 않으면서도 세금을 관리한다. 그것이 오늘날 디지털 행정 시대에 가능한 새로운 국가 운영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