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디지털 세금 제도: 세계 최신생국의 세무 인프라 실험기
2011년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남수단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젊은 주권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립 이후 내전과 부족 간 갈등, 기초 인프라 부족, 고질적인 행정 비효율 등으로 국가 체계 전반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특히 세무 행정은 수기로 운영되거나 지역 관료의 재량에 의존하는 형태로, 국가 재정 확보는 물론 납세자의 신뢰 확보에도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국제사회의 원조와 석유 수익에 의존해온 이 나라는 이제 경제 자립의 필수 조건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을 주요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다.
남수단은 다른 국가와 달리 이미 존재하던 아날로그 행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디지털 기반으로 세정 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국가 기관이 막 태동하는 단계에서 바로 전자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남수단 정부는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 UNDP 등과 협력하여 2021년부터 디지털 납세 시스템 기반 조세 행정 정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남수단 디지털 세금 제도의 정책 배경, 시스템 구성, 적용 방식, 한계와 도전 과제, 그리고 국제 협력 전망을 심층적으로 다뤄본다.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의 정책적 배경과 행정 수립 단계의 특수성
남수단은 독립 이후 약 90%의 공공예산을 석유 수출 수익에 의존해 왔으며, 세금은 정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미만에 불과했다. 이는 명백한 재정 불균형이며, 내전이나 국제유가 하락이 곧바로 국가 기능 정지로 이어지는 취약 구조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안정적 세입 확보를 위해 일반 국민과 민간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 세금제도를 빠르게 정착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행정 조직이나 세무 전문 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아예 전자 기반의 세무 시스템으로 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유엔과 세계은행은 이를 ‘제로베이스 디지털 세정 전략’이라고 부르며, 남수단을 전통적 종이 행정 대신 클라우드 기반 조세 시스템으로 바로 진입시키는 테스트베드로 간주했다. 이에 따라 남수단은 디지털 세금 제도를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닌, 국가 시스템의 일환으로 통합 설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남수단 조세청(NRA, National Revenue Authority)은 2021년부터 "e-TAS"라는 통합 전자세금시스템 개발을 시작했으며, 이 시스템은 사업자 등록, 고유 납세자 번호 발급, 전자 인보이스, 부가가치세 신고, 소득세 정산, 감사 플래그 생성 기능 등을 기본으로 포함하고 있다.
e-TAS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세금 제도의 핵심 구조
남수단 정부는 세계은행과 협력하여 e-TAS(Electronic Tax Administration System)를 중심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국세청 서버와 연계되어 있으며, 현재 주도적으로 운영되는 기능은 세 가지다.
첫째는 전자적 사업자 등록, 둘째는 온라인 부가가치세 신고, 셋째는 고정 납세자 대상의 소득세 전자 신고 및 납부 시스템이다.
전자 사업자 등록 절차는 단순하다. 납세자는 국세청 웹사이트 또는 모바일 앱을 통해 이름, 주소, 사업 종류를 입력하면 고유 납세번호(TIN)가 발급된다. 이후 모든 세무 활동은 해당 번호를 기준으로 e-TAS 시스템에서 자동 관리된다. 부가가치세(VAT)의 경우, 거래 시 발행되는 전자 인보이스가 시스템에 연동되고, 인보이스 데이터 기반으로 세액이 자동 계산된다. 이는 수기 작성과 비교해 과세 누락 가능성을 대폭 줄이는 효과를 낸다.
또한 남수단은 ‘Prepaid Tax’ 제도를 시험 운영 중이다. 이는 고정 세율에 따라 선납 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세금 제도와 연계하여 복잡한 회계 기록이 어려운 소규모 납세자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e-TAS는 클라우드 기반이라 데이터 손실 우려가 적고, 인터넷이 불안정한 지역에서도 간헐적 연결을 통한 데이터 업로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인터넷 인프라가 미비한 남수단의 현실을 반영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 적용 대상과 납세자 유형별 전략
남수단 정부는 디지털 세금 제도의 우선 적용 대상으로 도심 내 상업사업자, 외국계 건설사, NGO 협력업체, 금융 기관 등을 선정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인터넷 접근성이 높고, 세무 관리 필요성도 크기 때문에 시스템 전환 효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외국계 기업이나 국제기구 협력 업체는 프로젝트 단위로 대규모 자금 흐름을 발생시키므로, 전자 방식의 과세 관리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중소 규모 자영업자나 지방 농업 종사자에 대해서는 보다 간소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 기반의 간이 납세 앱은 QR 코드 인식 기능, 음성 기반 입력, 자동 계산 기능 등을 포함해 문해력이나 전산 능력이 부족한 사용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설계됐다. 또한, 모든 시스템은 영어와 아랍어, 일부 부족어까지 지원해 다언어 납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현재 e-TAS에 등록된 납세자는 15만 명 수준이며, 이는 남수단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약 10%에 해당한다. 향후 5년 내 50%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이며, 이를 위해 디지털 세금 제도 교육 캠페인, 지방 세무소 IT화, 정기적인 앱 업데이트 및 기능 개선이 계획되어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 구축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한계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행정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 중 하나이며, 이러한 점은 디지털 세금 제도 구축에도 명확한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전국적으로 전기 공급이 불안정하고, 인터넷 접속률도 25% 미만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디지털 세무 시스템의 안정적인 접근이 어렵고,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기 신고가 병행되고 있다.
또한 납세자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극히 낮은 수준이며, 스마트폰 보급률 자체가 낮은 상황에서 모바일 앱 기반의 세정 접근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e-TAS 시스템 자체는 잘 설계되었으나, 이를 활용하는 인적 기반이 약한 점이 디지털 세금 제도의 효과적 작동을 가로막고 있다. 더욱이 세무 공무원 대부분이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 대응이나 납세자 문의 처리에도 한계가 있다.
법제도적으로도 문제는 존재한다. 아직까지 암호화폐, 디지털 자산, 해외 원격근무 등의 새로운 소득 유형에 대한 세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해당 분야에서의 과세 공백이 심각하다. 이로 인해 젊은 세대의 디지털 창업이나 국제 비즈니스 활동이 세정 체계 바깥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조세 형평성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제 협력과 디지털 세금 제도의 미래 전망
남수단 디지털 세금 제도의 미래는 국제 사회와의 협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남수단은 세계은행, UNDP, 아프리카개발은행과 함께 디지털 세정 인프라 확충, 시스템 고도화, 공무원 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OECD의 BEPS 기준 일부를 참조해 글로벌 디지털세 적용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으며, 향후 CRS(금융정보 자동 교환 제도) 도입 가능성도 논의 중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모든 납세자가 전자 방식으로 세금 신고·납부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하는 ‘e-TAS 2.0’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인공지능 기반의 감사 기능, 실시간 거래 분석, 인보이스 오류 탐지, 블록체인 기반 납세 기록 보존 시스템 등도 연구 중이다. 또한 디지털 세금 제도를 통해 세입 확보뿐 아니라, 행정 투명성과 국가 신뢰도 향상, 외국인 투자 유치 기반 조성, 빈곤 지역에 대한 재정 재분배 능력 확보를 꾀하고 있다.
남수단은 여전히 분쟁의 상흔을 안고 있고, 많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도기적 국가다. 하지만 디지털 세금 제도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이 나라는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국가 재정 구조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세무 시스템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자립의 문제임을 남수단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