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디지털 세금 제도: 행복 지수 뒤의 기술 기반 정책
부탄은 경제 성장보다 ‘국민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정책 철학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아왔다. “국민 총 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는 이 나라가 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이지만, 최근에는 행정 효율성과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현실적 과제도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탄 정부는 조용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세금 제도와 행정 체계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디지털 세금 제도 도입을 국가 운영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시키고 있다.
디지털 세정 시스템의 도입은 단순히 기술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서비스 접근성 향상, 조세 정의 실현,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이라는 다층적 정책 목표와 맞닿아 있다. 특히 부탄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행복지수를 유지하면서도 재정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부탄의 디지털 세금 제도 구축 현황, 실제 운영 방식, 디지털 창업자 및 외국인을 위한 세무 환경, 그리고 제도적 과제 및 발전 가능성까지 네 가지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다룬다.
부탄 디지털 세금 제도의 구축과 시스템 구조
부탄 정부는 2019년부터 세정 시스템의 디지털화를 본격화하며, 전자 세무 관리 시스템(BT-Tax: Bhutan Tax Information System)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부탄 국세청(DRR: Department of Revenue and Customs)의 주도로 개발되었으며, 법인세, 개인소득세, 영업세(Business Income Tax), 부가가치세(VAT) 등 주요 세목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BT-Tax 시스템의 핵심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납세자는 국가 신분 번호(CID) 또는 사업자등록번호(TPN)를 통해 디지털 납세 계정을 생성할 수 있다.
둘째, 신고서는 온라인으로 제출하며, 납부 내역, 환급 요청, 세무 기록 확인 등의 기능도 클라우드 기반으로 처리된다.
셋째, 세금 신고 마감일 알림, 신고 오류 자동 감지, 영수증 자동 발행 등 사용자 편의 기능이 강화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행정 인프라가 제한된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도 세무 서비스를 접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웹 기반뿐만 아니라 모바일 최적화 플랫폼으로도 병행 운영되고 있다.
전자 인보이스 시스템은 아직 의무화 단계는 아니지만, 점차 확대 적용되며 거래 투명성과 과세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와 자영업자·창업자 과세 체계
부탄의 조세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최근 디지털 경제 및 청년 창업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세정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 온라인 강의 제공자, 소셜 미디어 마케팅 전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은 이제 소득 유형에 따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BT-Tax를 통해 신고해야 한다.
연간 소득이 100,000 눌트럼(Nu) 이상인 자영업자는 세무 등록 의무가 있으며, 부탄 정부는 소규모 창업자에게 정률 과세(예: 1~3%) 또는 면세 기준을 적용하는 간소 납세 제도(Small Business Tax Regime)를 병행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회계 전문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신고 절차를 간소화하면서도 세수 기반은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창업자와 프리랜서를 위한 지원 정책으로는
1. 전자 신고 가이드북 제공,
2. 무료 세무 상담 전화 운영,
3. 회계 교육 워크숍 등이 있다.
이는 납세자의 자발적 세금 신고 참여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전자 인보이스 시범 도입도 확대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부는 실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세금을 산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세금 징수를 위한 수단을 넘어, 국가 신뢰 기반 조성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외국인과 비거주자를 위한 디지털 세금 제도 접근성
부탄은 비교적 폐쇄적인 외교·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최근 들어 친환경 관광산업, 교육, IT 서비스 분야에 한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외국인 법인 또는 전문가를 위한 디지털 세금 제도 접근성도 함께 개선되고 있다.
외국인은 부탄 내 법인 설립 시 TPN(조세 식별번호)을 발급받고, BT-Tax 시스템에 등록한 후 전자 방식으로 모든 세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세금 신고와 납부는 현지 은행 계좌와 연동되어 있으며, 외국인을 위한 영어 기반 인터페이스와 다국어 세금 가이드 문서도 부분적으로 제공된다.
또한, 정부는 외국인 원격 근로자 또는 디지털 노마드에게도 일정 기준 하에 단기 체류 허가와 세무 등록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들의 수익에 대해서는 소득 출처와 체류 기간에 따라 과세 여부가 달라진다.
외국 기업이 부탄 내에서 디지털 서비스(예: 서버 호스팅, 소프트웨어 유통)를 제공할 경우, 원천징수세 또는 서비스세 형태로 간접 과세가 적용될 수 있다.
이처럼 부탄은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도 디지털 방식으로 세금 신고·납부가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 조세 기준과도 점차 정합성을 맞춰가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세금 제도의 한계와 지속 가능한 발전 가능성
부탄의 디지털 세금 제도는 기술적으로는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제도적·기술적 한계도 여전히 존재한다.
첫째, 전국적인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하여 농촌 지역의 전자 신고율은 아직 낮은 편이다. 이로 인해 전자 신고 시스템이 전국적 과세 공정성 확보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둘째, 디지털 자산(예: 암호화폐, NFT 등)에 대한 과세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일부 온라인 수익 창출 활동도 신고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조세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세무 시스템의 유지·보수, 개인정보 보호 등과 관련한 IT 전문 인력이 부족해 전산 장애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부탄 정부는 향후 5년간 전자 인보이스 전면 의무화, 모바일 기반 세금 신고 시스템, AI 기반 세무 감사 시스템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를 통해 조세 제도의 신뢰도와 국민 참여율을 동시에 높일 계획이다.
특히 GNH 철학과 디지털 행정이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함으로써, 부탄은 행복 지수 중심 정책과 기술 기반 행정이 공존 가능한 국가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